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비밀스러운 첫사랑과 문맹의 수치심, 감옥으로 보낸 낭독 테이프, 책을 딛고 떠난 한나의 비극적 결말)

영화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공식 포스터

수십 년간 감옥으로 배달된 마이클의 낭독 테이프를 들으며 홀로 글을 깨쳤던 한나가 출소를 앞두고 책을 디딤돌 삼아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결말과, 낡은 틴케이스에 남겨진 유품 앞에서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쏟아졌던 영화입니다. 2008년에 개봉한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영화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The Reader)》는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하여, 2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을 배경으로 한 여인과 한 소년의 파괴적이면서도 애절한 사랑, 그리고 홀로코스트라는 거대한 역사적 비극과 죄의식을 섬세하고 농밀하게 엮어낸 걸작 드라마입니다. 주인공 한나 슈미츠를 연기한 케이트 윈슬렛은 맹목적이고 무지한 인간의 내면부터 세월의 무게를 고스란히 담아낸 노역까지 경이로운 열연을 펼치며 제81회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을 품에 안았습니다. 소년에서 중년의 법학자로 변해가는 마이클 역의 데이비드 크로스와 랄프 파인즈 역시 지독한 도덕적 혼란과 평생을 짓누른 사랑의 상흔을 완벽하게 형상화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열병처럼 번져나간 두 사람의 비밀스러운 만남부터, 문맹이라는 치명적 수치심 앞에 모든 죄를 짊어진 한나의 법정 선택, 그리고 수십 년의 세월을 건너 녹음테이프와 책으로 이어진 비극적 결말의 깊은 울림까지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15세 소년과 36세 여인의 비밀스러운 사랑: 목소리로 교감하던 책 읽기와 불현듯 찾아온 이별

1958년 전후의 서독, 15세의 병약한 소년 마이클 버그는 길거리에서 성홍열로 쓰러져 구토를 하던 중 36세의 전차 차장 한나 슈미츠의 도움을 받습니다. 건강을 회복한 마이클은 감사를 표하기 위해 꽃다발을 들고 한나의 허름한 아파트를 찾고, 두 사람은 나이와 신분의 격차를 뛰어넘어 격정적인 사랑에 빠져듭니다. 관능적인 육체적 교합 속에서 한나는 마이클에게 한 가지 기묘한 요구를 건넵니다. 관계를 맺기 전 반드시 자신에게 소리 내어 책을 읽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마이클은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부터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 체호프의 소설까지 다양한 고전문학을 낭독해 줍니다. 책을 읽어줄 때마다 한나는 소녀처럼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경청하다가 슬픈 대목에서는 가슴을 쥐어뜯으며 눈물을 흘립니다. 그러나 소년은 그녀가 왜 그렇게 책 낭독에 집착하는지, 메뉴판이나 표지판을 늘 자신에게 대신 읽게 하는지 그 이유를 눈치채지 못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전차 회사에서 사무직 승진 통보를 받은 한나는 그 어떤 메모 한 장 남기지 않은 채 홀연히 자취를 감추어버립니다. 영문도 모른 채 버림받은 마이클의 가슴에는 치유되지 않는 첫사랑의 깊은 생채기가 남게 됩니다.

전범 재판의 피고인과 문맹의 수치심: 진실보다 부끄러움을 감추려 했던 한나의 비극적 선택

8년의 세월이 흐른 1966년, 법대생이 된 마이클은 나치 전범 재판을 참관하던 중 피고인 석에 앉아 있는 한나를 발견하고 경악을 금치 못합니다. 한나는 2차 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SS(친위대) 여성 감시원으로 복무하며, 연합군의 폭격으로 불타는 교회 안에 갇힌 300명의 유대인 여성들을 문을 열어주지 않고 몰살시킨 혐의로 기소되어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행위에 대해 "문을 열어주면 혼란이 생겨 수용자들이 탈출할까 봐 감시원으로서 직무를 수행했을 뿐"이라며 끔찍하도록 평범하고 무감각한 악의 민낯을 보입니다.

다른 동료 감시원들은 살기 위해 모든 책임을 한나에게 떠넘기며, 그녀가 당시 학살 보고서를 직접 작성한 주동자라고 거짓 증언을 합니다. 재판장이 필적 감정을 위해 필체를 확인하겠다고 종이를 건네자, 한나는 모멸감에 떨며 "내가 썼다"고 자백해 버립니다. 방청석에서 이를 지켜보던 마이클은 비로소 모든 조각을 맞춥니다. 한나는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문맹'이었던 것입니다. 승진 통보를 받고 달아났던 것도 서류 작업을 해야 하는 사무직이 되면 문맹이 들통날까 두려웠기 때문이었습니다. 수백 명을 살해한 잔혹한 학살자라는 낙인보다 자신이 까막눈이라는 사실이 세상에 까발려지는 수치심을 더 끔찍하게 여긴 한나는 결국 종신형을 선고받습니다. 마이클은 그녀를 변호할 결정적인 증거를 알고 있었지만, 도덕적 딜레마와 침묵 속에 갇혀 끝내 입을 열지 못합니다.

감옥으로 배달된 녹음테이프와 낡은 틴케이스 결말: 책을 디딤돌 삼아 떠난 속죄와 남겨진 슬픔

세월이 흘러 이혼과 고립 속에 살아가던 중년의 변호사 마이클은 서재에 카세트 녹음기를 켜고 다시 책을 소리 내어 읽기 시작합니다. 단 한 통의 편지나 안부도 동봉하지 않은 채, 오직 문학 작품을 낭독한 녹음테이프만을 교도소의 한나에게 수십 년 동안 지속해서 보냅니다. 감옥 안의 늙은 한나는 마이클의 목소리를 들으며 교도소 도서관의 책들을 대조해 가며 피나는 노력 끝에 마침내 스스로 글자를 읽고 쓰는 법을 터득합니다. 비뚤비뚤한 글씨로 "소년아, 네 목소리가 좋아"라는 짧은 답장을 보내지만, 마이클은 끝내 답장을 하지 않습니다.

20년 형기를 마치고 한나의 출소가 다가오자 마이클은 처음으로 교도소 면회실을 찾아 노인이 된 한나와 마주합니다. 과거의 죗값에 대해 진정 참회하고 있는지 차갑게 묻는 마이클의 태도에서, 한나는 자신이 그토록 기대했던 구원과 교감이 더 이상 바깥세상에 존재하지 않음을 직감합니다. 출소 당일 아침, 한나는 자신이 그동안 읽었던 마이클의 소설책들을 가지런히 발판처럼 쌓아 올린 뒤, 그 위에 올라서서 스스로 목을 매 생을 마감합니다. 그녀가 마이클에게 남긴 것은 차비로 모아둔 소액의 돈과 유대인 생존자에게 전해달라는 낡은 홍차 틴케이스였습니다. 뉴욕으로 가 생존자를 만나 유품을 전하고, 딸과 함께 한나의 무덤을 찾아 지난날의 지독한 사랑과 비극을 담담히 털어놓는 마이클의 뒷모습 결말은, 역사적 죄악의 무게와 개인적 사랑의 부채감 사이에서 영원히 방황할 수밖에 없었던 한 시대의 슬픈 초상을 그리며 가슴 찢어지는 비장미를 선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