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포스티노 (순박한 우체부와 망명 시인 네루다, 은유로 피어난 사랑과 녹음테이프, 파도 소리에 새겨진 시인의 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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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마주하며 '시는 쓴 사람의 것이 아니라 그 시를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사람의 것'이라고 수줍게 고백하던 순박한 우체부 마리오의 눈빛에서, 한 편의 시가 어떻게 평범한 인간의 영혼을 눈부시게 깨우는가에 깊은 뭉클함을 느꼈던 기억이 납니다. 1994년에 개봉한 마이클 레드포드 감독의 영화 《일 포스티노(Il Postino)》는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원작 소설 《불타는 인내(우체부)》를 스크린에 옮겨, 1950년대 이탈리아 나폴리 인근의 한 외딴섬을 배경으로 칠레의 위대한 망명 시인 파블로 네루다와 순박한 청년 우체부 마리오 루오폴로가 나눈 국경과 계급을 초월한 눈부신 우정을 서정적으로 그려낸 불후의 명작입니다. 주연을 맡은 이탈리아의 국민 배우 마시모 트로이시는 심각한 심장병 투병 중에도 수술을 미루며 혼신의 힘을 다해 촬영을 마친 직후 세상을 떠나 전 세계 영화 팬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습니다. 제6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을 비롯해 5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며 음악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단조롭고 척박하던 삶에 문학과 예술의 빛이 깃들 때 인간의 존엄과 감성이 어떻게 만개하는지를 따스하게 증명합니다. 이 글에서는 자전거를 타고 시인에게 편지를 배달하며 은유의 마법에 눈뜨던 마리오의 설렘부터, 시의 힘으로 아름다운 여인 베아트리체의 마음을 사로잡은 순수한 사랑, 그리고 떠나간 시인을 위해 섬의 아름다운 소리들을 테이프에 담아두고 비극적으로 스러져간 감동적인 결말까지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외딴섬의 순박한 어부와 망명 시인의 조우: '은유'의 바다에 눈뜬 우체부 마리오
이탈리아 남부의 척박한 어촌 마을, 청년 마리오는 대대로 이어져 온 고된 뱃일이 적성에 맞지 않아 무기력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칠레에서 정치적 망명을 온 세계적인 공산주의 저항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이 작은 섬에 머물게 되면서 전 세계로부터 매일 산더미 같은 팬레터가 쏟아져 들어옵니다. 섬 주민 대부분이 글을 읽지 못하는 문맹이었기에, 유일하게 글을 읽을 줄 알았던 마리오는 오직 네루다 한 사람에게만 편지를 전달하는 임시 우체부로 고용됩니다. 자전거를 타고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내리며 우편물을 배달하던 마리오는 전 세계 수많은 여성들의 흠모를 받는 시인 네루다의 카리스마와 지성에 깊은 호기심을 품게 됩니다.
어느 날 마리오는 용기를 내어 네루다에게 '은유(메타포)'가 무엇인지 묻습니다. 네루다는 바다를 바라보며 "하늘이 울고 있다면 비가 내린다는 뜻이지"라는 직관적인 비유로 시의 언어를 설명해 줍니다. 시인이 읊어주는 시를 가만히 듣고 있던 마리오는 온몸이 붕 뜨며 배를 타고 파도 위를 흔들리듯 어지러운 전율을 느꼈다고 고백합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시의 본질적인 감각을 체험한 것입니다. 현학적인 문학 이론이 아닌 일상의 파도와 바람 속에서 언어의 아름다움을 깨달아가는 마리오의 변화는, 예술이란 결코 특권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세상을 진심으로 응시하는 모든 순수한 영혼에게 열려 있는 축복임을 보여줍니다.
사랑을 고백하는 시의 힘과 베아트리체: "시는 쓴 사람의 것이 아닌 필요한 사람의 것"
마을 주점에서 일하는 아름다운 여인 베아트리체 루소를 보고 첫눈에 반해버린 마리오는 말을 잃을 정도로 지독한 상사병에 걸립니다. 평생 사랑을 표현하는 언어를 가져본 적 없던 마리오는 네루다를 찾아가 자신의 연애 상담을 부탁하고 시를 가르쳐 달라고 조릅니다. 네루다로부터 선물 받은 공책에 생각을 끄적거리기 시작한 마리오는, 급기야 네루다가 아내 마틸데를 위해 썼던 아름다운 연시를 통째로 외워 베아트리체에게 바칩니다. "당신의 미소는 나비처럼 번집니다." 마리오가 속삭인 은유의 언어는 거친 어부들의 거친 농담 속에서만 살아왔던 베아트리체의 가슴에 격정적인 불꽃을 지핍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네루다는 마리오를 나무라며 "왜 남의 시를 훔쳐 사랑을 고백했느냐"고 묻습니다. 이때 마리오는 물러서지 않고 영화사상 가장 빛나는 명대사를 던집니다. "시는 쓴 사람의 것이 아니라, 그 시를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사람의 것입니다." 이 당돌하면서도 맑은 대답 앞에 거장 네루다는 말문이 막히고 맙니다. 시는 종이 위에 박제된 문자가 아니라, 사랑을 갈망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입술을 통해 비로소 살아 숨 쉬는 생명체임을 우체부 마리오가 증명해 보인 것입니다. 두 사람의 깊은 교감 속에 마리오는 마침내 네루다를 증인으로 세우고 베아트리체와 행복한 결혼식을 올립니다.
섬의 소리를 담은 녹음테이프와 비극적 최후 결말: 네루다의 눈물 속에 영원히 살아 숨 쉬는 시인
얼마 지나지 않아 칠레 정부의 망명 취소 결정이 내려지고, 네루다는 환호 속에 조국으로 귀환합니다. 마리오는 언젠가 시인이 자신을 기억하고 편지를 보내줄 것이라 기대하지만, 오랜 세월이 흘러도 네루다의 비서가 보낸 사무적인 짐정리 요청 편지 외에는 아무런 소식이 오지 않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시인이 시골 우체부 따위는 까맣게 잊었을 것이라며 비웃지만, 마리오는 시인을 결코 원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네루다가 두고 간 녹음기를 짊어지고 섬 곳곳을 누비며 네루다가 그토록 사랑했던 섬의 풍경과 소리를 채집하기 시작합니다. 절벽에 부딪히는 작은 파도와 큰 파도 소리, 언덕을 스치는 바람, 교회 종탑의 청아한 종소리, 그리고 곧 태어날 자신의 아이 '파블리토'의 심장 박동 소리까지 온 정성을 다해 테이프에 녹음합니다.
세월이 흘러 1950년대 후반, 백발이 되어 다시 이탈리아의 섬마을 주점을 찾은 네루다는 그곳에서 성장한 어린 소년 파블리토와 슬픔에 잠긴 베아트리체를 마주합니다. 베아트리체는 마리오가 이미 몇 년 전 세상을 떠났다는 비통한 소식을 전합니다. 네루다의 사상에 공감하여 스스로 시인이 되었던 마리오는 나폴리에서 열린 대규모 노동자 집회 단상에 올라 자신이 직접 쓴 시를 낭독하려던 순간, 무자비한 경찰의 무력 진압과 군중의 발길에 짓밟혀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던 것입니다. 마리오가 남겨둔 녹음테이프를 틀어놓고, 파도 소리와 아기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홀로 쓸쓸한 해변을 거니는 네루다의 눈물겨운 결말은, 한 위대한 시인이 작은 영혼에게 건넨 한 줄기 시가 어떻게 세상을 향해 당당히 걸어 나가는 한 인간을 잉태했는지를 웅변하며 보는 이의 가슴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시적 감동을 남깁니다.